[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8] 관솔불과 호롱불 사이에서 | |||||
작성자 | 관리자 | 작성일 | 2021-11-04 15:59:00 | 조회수 | 479 |
---|---|---|---|---|---|
관솔불과 호롱불 사이에서 “재식아,기름 좀 내오너라.” 어스레한 저녁녁 별이 채 뜨기도 전에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나면 어느새 온 천지는 암흑으로 캄캄해진다.그러면 영락없이 이러한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들린다.나는 부리나케 헛간으로 달려가 짚더미 속에 감춰놓은 석유병을 확인하며 얼마를 덜어야 할지 머뭇머뭇 어쩔 줄을 모른다. 그 당시 면소재지에는 금광이 있어 이미 전깃불이 들어와 있었지만, 산골 오지의 우리 마을 성암리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. 아니 전깃불은 고사하고 호롱불을 켤 석유마저 제대로 구할 수 없었고 석유를 태울만한 사정은 더욱 아니었다.그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살아야 할 따름이었다.그 런데 공부를 하던 내게 이러한 상황은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. 숙제와 예습,복습 등을 해야 하는데 불이 없으니 글자 하나도 제대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. 나는 생각다 못해 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관솔을 따다가 불을 붙여놓고 그 불빛에 공부를 했었다.그런데 관솔불의 가장 큰 단점은 그 불을 매달 수 없는 데 있었다. 불이 놓인 그 주위만 조금 밝을 뿐 빛이 흐렸기 때문에 글자가 어리어리하였고,그래서 불 가까이에 다가 앉으면 불똥이 튀어 책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십상이었다. 반딧불에 글을 읽고,눈빛에 공부를 했다는 형설(螢雪)의 공(功)이 내게는 결코 허언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.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하였다.좋은 수가 없을까 하고 고심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집에 있는 콩이나 팥을 한 됫박쯤 짊어지고 함양의 장터를 찾아가는 일이었다. 함양까지는 왕복32km,그러니까 무려80리 길이었지만 이때만큼은 발걸음도 가볍고 수많은 고개를 넘어도 힘이 드는 줄 몰랐다.그것을 팔면4홉들이 막소주 대병에 석유를 가득 받을 수 있었고,그러면 환한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. 가끔은 닭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10km쯤 떨어진 인월장터로 가서 석유를 바꿔 오기도 했다. 그런데 이 사실을 어떻게 아셨는지 아버지께서는 밤만 되면 석유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이다. 나로서는 여간 곤혹스럽고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. 하긴 생활을 위해서는 기꺼이 석유를 내놓아야 마땅했다. 왜냐면 밤이 늦도록 어머니나 아버지께서는 길쌈을 하거나 새끼를 꼬곤 하셨는데,불이 없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.더욱이 길쌈은 우리 집안의 생계와 직결되는 일이었다.그렇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. 공부가 당장 큰 벌이는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,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데 너무도 필요한 것임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. 오히려 이런 내 속사정을 몰라주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다. 어쨌든 아버지의 명이니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. 그래서 아버지께서 내미는 호롱불에 석유를 찔끔 따라 드리고 말았는데,그것마저도 얼마나 아까웠는지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. ‘재식아,기름 좀 내오너라’하는 아버지의 명령 빈도가 점점 많아지면서 나의 절망감도 그에 비례해서 한층 깊어졌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. |
|||||
첨부파일 |